그렇게 시일이 지나 다시 보름이 다가오고 있었어.
오전부터 안절부절못하던 남씨 부인은
이른 저녁을 먹고는 하인들을 불러 대문 앞에 팥을 잔뜩 뿌려두었어.
“갑자기 팥을 이렇게나요? 마님?”
“그래, 묻지 말고 시키는 대로 하거라. 입단속들 잘하고.”
“예, 알겠습니다. 마님.”
그렇게 팥을 뿌리고 어둠이 깊어지기 시작하자
또 자욱하게 안개가 몰려들기 시작했어.
남씨 부부는 잔뜩 긴장한 채로 호리병을 쥐고
방에 앉아서 올 것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지.
“부인, 너무 염려 마시오. 일이 잘 풀릴게요.”
“예, 그럴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과 집안을 지키는 일이니
정신 단단히 차리고 해내겠습니다.”
남대감은 남씨 부인의 손을 꼭 잡아주었어.
그리고 드디어 밖에서 무언가 분주히 오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어.
그 소리는 대문을 향하다가
갑자기 짐승의 비명소리로 바뀌었지.
“크르렁!! 아우우우우우~”
남씨 부인은 문을 열고 나가서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몸을 돌렸어.
짙은 안개 때문에 보이지 않았지만,
소리의 방향은 알 수 있었지.
남대감이 쥐어준 흰색 호리병의 뚜껑을 열고 힘껏 던져버렸어.
바로 그 순간!
호리병에서 하얀 가시덩굴이 솟구쳐 나오기 시작했어.
가시덩굴은 빠른 속도로 안개를 뚫고 지나가서
안개 사이에 무언가를 옭아매었어.
술렁이듯이 흔들리던 덩굴에 말려 나온 것은
바로 첫째 아들 혜성이었어.
소중한 첫째 아들이 가시 덩굴에 묶여 나오는 모습을 본
남씨 부부는 기절 할 것 같았어.
하지만 이내 스님의 말을 떠올리며 정신을 차리려고 애썼지.
가시덩굴에 칭칭 감겨 나온 혜성은
눈이 하얗게 뒤집힌 채로
늑대의 울음소리를 내고 있었어.
그러다가 가시가 점점 졸라오자
고개를 떨구고 기절하고 말았어.
그러다 혜성의 입에서
하얀 연기가 스르르 흘러나오지 뭐야?
그 연기는 순식간에 호리병으로 빨려 들어갔어.
아들 혜성이가 의식을 잃은 채로
바닥에 툭 떨어지는 순간,
남대감은 달려가 혜성이를 안았고
남씨 부인은 호리병 뚜껑을 막았어.
순식간에 하얀 가시덩굴이 사라졌어.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던 거야.
기다렸다는 듯이 두 번째 늑대 울음소리가 들려왔어.
남대감은 혜성이를 대청으로 옮겨 눕히고
파란색 병을 남씨 부인의 손에 쥐여주었어.
남씨 부인은 힘껏 파란 호리병을 안개 속을 향해 던졌어.
호리병에서 물기둥이 솟아 나왔어.
물기둥은 회오리처럼 빙글빙글 돌면서
또다시 안개를 뚫고 들어갔어.
“캬르르릉! 켕켕!!”
무서운 짐승 소리가 휘몰면서
물기둥에 말려 나온 건 둘째 아들 혜율이었어.
남씨 부인은 식은땀을 흘리며
혜율이가 무사하기만을 빌었어.
혜율이 의식을 잃자 입에서 파란 연기가
흘러나와 호리병 속으로 빨려 들어갔지.
바닥에 나뒹구는 혜율이를 남대감이 달려가서 부축했어.
남씨 부인은 마음이 미어지는 것 같았지만
주지스님의 말을 다시 떠올렸어.
‘절대로 놀라거나 소리를 지르면 안 됩니다!’
입술을 질끈 깨물면서 남씨 부인은
파란 호리병 뚜껑을 닫았어.
‘가르르르릉’
성질이 잔뜩 난 듯한 짐승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어.
남씨 부인은 정신을 가다듬고
빨간 호리병의 뚜껑을 열고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던졌어.
이번엔 순식간에 불기둥이 나왔어.
안개를 가로질러 들어간 불기둥이 소용돌이치듯 요동을 쳤어.
그리고 마침내 셋째 아들 혜인이가 불에 싸여 나왔어.
“앗! 혜인아!”
불에 타는 혜인이의 모습을 본 남씨 부인이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어.
순간 불기둥이 스르르 사라지면서
혜인이가 땅에 떨어지고 말았어.
아직 호리병은 열려있는데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