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인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남대감은 속이 타들어 갔지.
그 사이에 또 무슨 일이 생기지나 않을까
걱정을 해가면서 말이야.
남씨 부인도 마찬가지였어. 하루하루 수척해져 갔지.
“어머니 요즘 안색이 많이 좋지 않아요. 괜찮으신 거예요?”
문안인사를 드리러 온 아이들이 남씨 부인을 걱정했어.
“아니다. 그냥 조금 기력이 없는 것뿐이란다. 곧 괜찮아질 거다.”
남씨 부인은 아이들이 괜히 걱정할까 봐
별일 아닌 듯 대수롭지 않게 얘기하고 넘어갔어.
그 사이에 또 시일이 지나가고
마침내 심부름을 갔던 하인이 돌아왔어.
하인은 혼자 온 것이 아니라 주지스님과 함께 왔어.
“직접 와주셨습니까!”
남대감이 버선발로 달려 나가 맞이했어.
집 안으로 들어온 주지스님은
눈을 꼭 감고 잠시 아무 말이 없었지.
그리고 곧 남대감이 안내하는 방으로 들어갔어.
주지스님과 마주 앉은 남대감이
그간의 일을 낱낱이 이야기했어.
줄곧 눈을 지그시 감고 얘기를 듣던 주지스님이 이내 말했어.
“이 변고는 이미 예정되어 있던 것입니다.
그간 무탈하게 지내온 것은 모두 부처님의 덕입니다.
이제부터 제가 하는 얘기를 듣고 잘 버티셔야 큰 고비가 넘어갈 것입니다.”
그러면서 주지스님은 흰색, 파란색, 빨간색 호리병을 내놓았어.
“이것들은 다 무엇입니까?”
남대감이 물었어.
“이 집 대감마님을 함께 뵙고 싶습니다.”
주지스님의 말에 남대감은 의아했지만
서둘러 남씨 부인을 불렀지.
“저를 부르셨습니까?”
“오래전에 저희 절에 공양을 다녀가신 뒤로
또 꿈을 꾸신 적이 있으십니까?”
그제서야 남씨 부인은 그간 말하지 않았던 꿈 이야기를 했어.
“그것이, 늘 같은 꿈이었습니다.
마지막 혜령이를 낳기 직전에 꾼 꿈만 꽃을 손에 쥐었지요.”
남씨 부인의 긴 이야기가 끝났고
주지스님은 눈을 감고 침묵하고 있었어.
꿈 얘기를 처음 들은 남대감도 깜짝 놀랐지.
“아니, 그간 왜 한 번도 꿈 얘기를 하지 않았단 말이오?”
“그것이 그저 귀한 아이를 얻을 태몽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반복되기는 하였으나 아이들을 낳고 나서 키우느라
여념이 없어 그만 잊고 지냈습니다. 이 몸의 불찰입니다.”
남씨 부인은 울먹이다시피 말했어.
이윽고 주지스님이 눈을 뜨고 아주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어.
“지금부터 소승이 하는 말을 잘 들으셔야 합니다.”
“예, 그러겠습니다. 방도가 있습니까?”
“제가 드린 이 병은 그냥 호리병이 아닙니다.
이 댁에 흘러들어온 나쁜 기운과 사술을 잡아 없앨 것입니다.”
“사술이라니요!”
남씨 부인의 안색이 하얘졌어.
“오래전에 여우를 구하기 위해 잡아 죽인
늑대의 원혼이 맴돌고 있습니다. 다음 주면 다시 보름이지요.
보름달이 뜨는 날이 되면 저녁을 먹고
밤이 깊기 전에 대문 앞에 팥을 잔뜩 뿌려두십시오.
밤이 오고 안개가 깊어지면 소리가 들릴 것입니다.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흰색 호리병의 뚜껑을 열어 던지십시오.
무슨 일이 일어나도 절대로 놀라거나
소리를 지르시면 아니 됩니다. 아시겠습니까?”
“예, 명심하겠습니다. 그렇게만 하면 되겠습니까?”
“그다음에 눈앞에 보이는 일에 놀라지 마시고
호리병으로 나쁜 기운이 스며들면
다시 뚜껑을 꼭 닫으십시오.
그래도 일이 끝나지 않거들랑 파란색, 빨간색을 모두 사용하십시오.”
“예, 꼭 그리하겠습니다.”
남씨 부인의 옆에서 남대감도 걱정이 깊었지.
“제가 도울 일은 없겠습니까?”
“남대감께서는 남씨 부인이 놀라거나
쓰러지지 않게 곁을 지켜주십시오.
누구의 방해도 받아서는 아니 되는 일입니다.
일이 잘 마무리가 되면
다시 이 댁에는 화평한 기운이 찾아올 것입니다. 나무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