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지런하고 붙임성 좋은 쥐가 있었습니다.
쥐는 겨울이 올 것을 대비해서 열심히 식량을
찾아다니다가 집으로 돌아가던 중이었어요. 하지만
혼자서 외롭게 식량을 찾는 것이 여간 쉽지 않았습니다.
쥐는 누군가 함께 할 친구가 있다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때마침 고양이도
집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고양이는 겨울을 대비할 생각은
하지 않고 오늘 먹을 음식만을 찾아다니다가
집으로 돌아가던 중이었어요. 매일 음식을 찾는 것이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었어요. 고양이는 누군가가
자신을 대신해서 음식을 찾아주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고양이와 쥐가 길 위에서 만나게 됐습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친구가 되자고 말했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바라고 있던 것은 완전히 달랐지만요.
그 둘은 한 집에서 살면서
일단 겨울에 먹을 음식부터 모으기로 했습니다.
고양이는 굳이 겨울에 먹을 음식을
벌써부터 찾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하지만 쥐와 함께 살면서 쥐가 구해오는 음식을 먹으려면,
먼저 쥐가 원하는 대로 해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고양이와 쥐는 근처를 돌아다니며
비축할 만한 식량을 열심히 찾기 시작했습니다.
둘은 머지않아 커다란 버터 한 덩이를 발견하게 됐어요.
고양이는 그 자리에서 버터를 모두 먹어버리고 싶었지만
쥐가 옆에 있었기 때문에 꾹 참았습니다.
그 둘은 버터를 어디에 두는 게 좋을지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습니다. 아무데나 놔둔다면
자칫 다른 동물들이 버터를 훔쳐 갈지도 몰랐거든요.
한참을 고민한 끝에 고양이가 의견을 냈습니다.
"버터를 성당에 있는 제단 아래쪽에 숨기자.
그곳이라면 아무도 훔쳐가지 못할 거야."
고양이의 의견이 맘에 들었던 쥐가 대답했습니다.
"좋아, 그곳에 숨겼다는 것은 우리 둘만 아는 거야.
겨울이 오기 전까진 절대로 손대지 않기로 하자."
쥐는 고양이와 얘기한 대로 버터를
성당 제단 아래쪽에 숨겼습니다.
"겨울에 먹을 음식은 찾았으니까 내일부턴
그날 먹을 음식을 찾아보자"
그 둘은 그렇게 각자 음식을 찾으러 길을 나섰습니다.
쥐는 같이 살기로 한 고양이의 몫까지 생각하며
음식을 더욱 열심히 찾았어요. 하지만 게을렀던 고양이는
쥐가 가져다주는 음식을 먹을 생각만 했습니다.
직접 음식을 찾아서 쥐와 나눠 먹을 생각은
처음부터 하지 않았던 것이었어요. 고양이는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쥐가 빨리 음식을 찾아
돌아오는 것만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쥐가 돌아왔을 땐 빈손이었어요.
쥐는 늘 혼자 먹을 음식을 찾는 것도 쉽지 않았는데
고양이의 몫까지 찾으려다 보니 음식을 구하는 것이
너무 어려웠습니다. 쥐는 아무런 음식을 찾지 못해
고양이에게 너무 미안했어요. 고양이라도 음식을 찾았기를
바라면서 돌아왔지만 고양이에게 나눠먹을 음식이
있을 리가 없었죠. 고양이는 쥐가 빈손으로 돌아오자
크게 실망했어요. 이럴 줄 알았다면
자신이 먹을 음식만이라도 찾아볼 걸 그랬다며 후회했어요.
고양이와 쥐는 내일은 꼭 음식을 찾겠다고 생각하며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 날이 됐어요. 고양이와 쥐는
음식을 찾아 길을 나섰습니다. 하지만 다른 동물들이
겨울을 대비해서 먹을 만한 것들을 이미 모두 가져갔나 봐요.
오늘도 그 둘은 결국 허탕을 치고 말았어요. 쥐는 생각했어요.
'내일은 조금 더 멀리까지 나가서 음식을 찾아봐야겠네.
고양이에게도 조금만 더 멀리 가서 찾아봐 달라고 부탁하자'
하지만 고양이는 쥐와는 완전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바로 겨울을 대비해 숨겨두었던 버터였습니다.
고양이는 버터가 너무나 먹고 싶었습니다.
매일 같이 허탕을 쳐서 너무 배가 고팠거든요.
물론 배고픔을 참을 순 있었지만 고양이는
배고픈 것이 무척 싫었습니다. 고양이는 자신과 똑같이
배고픔을 참고 있는 쥐에게 다가갔습니다.
사촌동생의 아이가 태어났는데 내가 그 아이의
대모가 되기로 해서 세례를 받기로 했다고 말했어요.
하지만 사실 고양이에겐 사촌동생이 없었어요.
고양이가 쥐에게 거짓말을 한 거였어요.
세례를 받으려면 성당에 가야 했으니까
성당에 가더라도 쥐의 의심을 사지 않으려고 말이에요.
쥐는 고양이에게 축하한다며 성당에 다녀오라고 했습니다.
성당에 다녀오는 동안 음식을 꼭 찾아 놓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과 함께요. 고양이는 그런 쥐를 뒤로하고
성당으로 향했습니다. 성당에 도착하자마자 고양이는
숨겨둔 버터를 꺼내 핥아먹었어요.
처음에 고양이는 버터를 아주 조금만 먹으려고 했지만,
고소한 버터 맛에 빠져서 배가 부를 때까지 정신없이
버터를 먹고 말았습니다. 고양이의 배가 불렀을 땐
이미 버터의 위쪽 부분이 모두 고양이의 뱃속으로
사라진 상태였어요. 배가 부른 고양이는
아주 만족스러워하며 햇살이 따뜻한 풀밭에 누웠어요.
고양이는 풀밭에서 실컷 잠을 자다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집에 도착하자 쥐가 고양이를 반겨주었습니다.
쥐가 하루 종일 찾은 음식이라곤 아주 작고 딱딱해진
빵 한 조각뿐이었습니다. 쥐는 얼마 없는 빵조각을
혼자 다 먹지 않고 절반을 고양이에게 나눠주었어요.
고양이가 낮에 먹은 버터와 딱딱해진 빵조각을 비교하며
버터의 고소한 맛을 떠올리고 있을 때 쥐가 물었습니다
"아이 이름은 뭘로 지었어?"
고양이는 갑작스러운 쥐의 질문에 당황했어요.
버터만 생각하고 있던 고양이가 무심코 대답했습니다.
"맨 윗부분!"
쥐는 아이 이름을 왜 그렇게 이상하게 지었는지
의아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습니다.
매일같이 빵조각 같은 작은 음식들만 먹는 날이 길어지자
고양이는 또다시 버터가 먹고 싶어졌습니다.
고양이는 쥐에게 찾아가 똑같은 거짓말을 했습니다.
또 다른 사촌동생의 아이가 태어나 대모가 되어주러
성당에 다녀와야 한다고 말이에요. 쥐는 고양이를 대신해
크게 기뻐하며 어서 성당에 다녀오라고 했습니다.
고양이는 그런 쥐에게 간단하게 인사를 건넨 후
성당으로 달려갔습니다. 눈앞에 버터가 아른거렸거든요.
성당에 도착한 고양이는 버터를 꺼내 허겁지겁
핥아먹기 시작했습니다. 역시 고양이가 그리워하던
고소한 버터 맛은 일품이었습니다. 고양이는 또다시
뒷일은 생각하지 않고, 배가 부를 때까지 버터를 먹어버렸어요.
어느덧 버터의 절반이나 먹고 나서야
고양이의 배가 불렀습니다. 고양이는 남은 버터를 다시
제단 아래 숨겨두곤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집에서 고양이를 기다리고 있던 쥐가 물었습니다.
"아이 이름은 뭘로 지었어?"
고양이가 이번에는 "절반!"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쥐는 아이 이름을 왜 그렇게 이상하게 지었냐며
고양이에게 물었습니다. 하지만 고양이는
그런 이름이 많은데 뭐가 이상한 거냐며
오히려 쥐를 타박하고는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날이 밝아오자 고양이는 다시 버터가 먹고 싶어졌습니다.
이제는 쥐가 가끔씩 가져오는 빵 부스러기 같은 건
음식 같지도 않았어요.
고양이는 버터가 너무나 먹고 싶은 나머지 자다가도
버터 꿈을 꾸다 깰 정도였습니다.
들판을 지나다 노란 꽃이 있으면 그게 버터로 보여서
침이 질질 흐르기도 했어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고양이는 또 버터를 먹으러
가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마땅한 변명거리가
생각나지 않았던 고양이는 쥐에게 다시 한 번 똑같은
거짓말을 했습니다. 세번째 사촌동생의 아이가 태어나
대모가 되어주어야 한다고요.
쥐는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어렵게 생긴 친구를 의심하고 싶지 않았어요.
쥐는 고양이에게 축하 인사를 건네며
성당에 다녀오라고 말했어요. 고양이는 쥐에게
인사할 겨를도 없이 쏜살같이 성당으로 향했습니다.
하루 종일 고양이 눈앞에 아른거리던 버터를
실제로 맛볼 수 있게 되었어요. 남아있던 버터를 꺼내고는
열심히 핥아먹기 시작했습니다. 머지않아 버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어요.
모두 고양이의 뱃속으로 말이에요. 겨울나기를 위해
쥐와 함께 찾아두었던 버터는 결국 겨울이 오기도 전에
고양이가 모두 먹어버리고 말았어요.
고양이는 없어진 버터를 아쉬워하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고양이의 표정에 아쉬움이 가득한 것을 보고
쥐가 물었습니다.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거야?"
고양이는 힘없이 고개를 저으며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럼 아이 이름은 뭘로 지었어?"
이번에도 쥐가 고양이에게 물었습니다.
고양이는 쥐에게 건성으로 대답했어요.
"전부."
쥐는 어디서도 들어본 적 없고
책에서도 본 적 없는 이름이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습니다.
그날 이후 고양이는 더 이상 아이가 태어났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성당에 남아 있는 버터가 없었으니
고양이도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었으니까요.
그 사이 추운 겨울이 찾아오게 됐습니다. 겨울이 되자
음식을 구하는 것이 더더욱 힘들어졌습니다.
쥐는 음식을 구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지자 드디어
버터를 꺼내 먹을 때가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쥐는 버터를 조금씩 조금씩 나눠 먹으면서
긴 겨울을 이겨낼 생각이었어요. 쥐는 고양이에게 줄 것과
자신의 몫으로 가져올 버터를 생각하며 성당으로 향했습니다.
성당에 도착한 쥐가 제단 밑을 열었어요. 하지만
제단 밑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옅게 깔리는 고소한 버터 향만이 그곳에 버터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줄 뿐이었어요. 그제서야 쥐는 깨달았습니다.
고양이가 모든 버터를 먹어치운 것을요.
고양이가 버터를 맨 윗부분, 절반, 전부에 나눠서 말이에요.
쥐는 화가 머리끝까지 났습니다. 겨울이 오기 전까지
절대로 손대지 않기로 했지만 고양이가 약속을 어겼으니까요.
심지어 조금도 남기지 않고 버터를 모두 먹어치운 고양이가
너무 미웠습니다. 쥐는 고양이를 찾아가서는 화를 냈어요.
약속을 지키지 않고 거짓말로 버터를 독차지한 것을
따졌습니다. 하지만 고양이는 오히려 쥐에게
화를 내며 말했어요. 한 마디만 더하면
잡아먹어버리겠다고요. 드디어 고양이의 본색이
드러난 것이었어요. 하지만 쥐는 대책 없이
버터를 모두 먹어 치웠으니 올겨울을 어떻게 보낼 거냐며
소리쳤습니다. 그러자 고양이는 맞는 말만 하는 쥐를
참을 수가 없어서 그 자리에서 쥐를 잡아먹어버렸습니다.
쥐를 잡아먹은 고양이는 쥐의 잔소리가 들리지 않아서
이제야 살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매서운 겨울바람이 고양이를 덮쳐 왔습니다.
어쩌면 고양이는 더 이상 음식을 구하지 못해서
올겨울을 무사히 이겨내지 못할 수도 있겠네요.
음식을 구해다 줄 쥐도 더 이상 없으니까요.
친구를 위할 줄 알았던 불쌍한 쥐는 평생 일만 하다가
결국 고양이이게 잡아먹혀버렸습니다.
하지만 쥐는 더 이상 겨울을 나기 위해
고민할 필요도 없고 더 이상 음식을 찾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되게 되었으니 인생이란 참 이상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