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날 어느 경치 좋은 작은 마을에
사이좋은 부부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 둘은
서로를 너무나 사랑했지만 아이가 생기지 않아서
걱정이 많았어요. 매일같이 아이를 갖게 해달라고 빌었던
부부에게 드디어 아이가 생겼습니다.
오랫동안 기다려온 만큼 부부는 뛸 듯이 기뻐했습니다.
아내는 행여나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문제가 생기진 않을까 걱정스러운 마음이 커졌어요.
아내는 집에서 거의 움직이지 않고
창문 밖을 내다보기만 했습니다. 아내는 그렇게
매일매일 창밖으로 보이는 멋진 정원을 가진
이웃집을 바라보며 아이가 태어날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아내가 매일같이 바라보던 정원은
화려한 꽃들과 싱그러운 식물들로 가득 차 있었어요.
아내는 집이 아니라 정원에서
아이를 기다리고 싶어 했습니다. 하지만
그 정원이 있는 이웃집의 주인은 무서운 마녀였기 때문에
정원에 함부로 들어갈 순 없었어요. 그 정원에는
꽃과 나무들뿐만 아니라 싱싱한 채소들도
길러지고 있었습니다. 채소 중에는
싱싱하고 맛있어 보이는 들상추인 라푼젤도 있었어요.
아내는 매일 먹는 빵 대신
라푼젤을 먹어보고 싶단 생각에 사로잡혔습니다.
매일같이 라푼젤 생각만 하던 아내는 결국
병에 걸리고 말았어요.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남편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어요.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서라면
반드시 무서운 마녀의 정원에서
라푼젤을 가져와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남편은 마녀에게 들키면 저주에 걸리는 것이
너무 두려웠습니다. 마녀가 어떤 저주를 내릴지
짐작도 가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그렇지만 남편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가
죽어가게 둘 순 없었기 때문입니다. 해가 지고
어둠이 잔뜩 내려앉은 깊은 밤이 되었어요.
안개까지 자욱하게 내려앉아 몸을 숨기기엔
더없이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남편은 용기를 내서
마녀의 정원 담을 넘었습니다.
라푼젤은 마녀의 정원 중앙에 다른 채소들과 함께
자라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몸을 잔뜩 웅크린 채
숨소리를 죽이고 살금살금 정원 중앙으로 향했습니다.
마침내 라푼젤에 다다른 남편은 라푼젤을
한 움큼 뜯어냈습니다. 마녀에게 들키면 어쩌나
조마조마한 마음을 뒤로하고,
남편은 결국 마녀에게 들키지 않고
정원을 빠져나올 수 있었어요. 마녀가 키운 라푼젤은
다른 어느 곳에서도 맛볼 수 없을 만큼
싱싱하고 영양이 풍부한 들상추였습니다.
남편이 마녀의 정원에서 가져온 라푼젤을 맛본 아내는
씻은 듯이 병이 나았어요. 아내는 그날 이후로도
라푼젤의 신선함과 아삭함이 입안에서
계속 맴도는 것 같았어요. 아내는 남편을 졸라
다시 한번 라푼젤을 가져다주길 부탁했어요.
남편은 아내의 부탁을 차마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아내가 또다시 병에 걸릴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에요.
남편은 한번 성공했기 때문에 이번에도
마녀에게 들키지 않고 라푼젤을 가져올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선뜻 아내에게 라푼젤을 가져다주겠다고 했어요.
또다시 깊은 밤이 되었습니다. 남편은 저번처럼
조심스레 정원 담벼락을 넘어갔어요.
정원 중앙으로 살금살금 기어가 드디어
라푼젤이 있는 곳에 도착했을 때, 눈앞에 보인 것은
매서운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던 마녀였어요.
마녀는 라푼젤을 훔쳐 갔던 도둑을 잡기 위해
정원 한구석에서 몰래 감시하고 있던 것이었습니다.
마녀는 도둑의 정체가 이웃집에 살고 있는
남편인 것을 알고 더 크게 화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마녀는 남편이 가장 싫어할 저주를 내리겠다고 했어요.
그 저주는 바로 아내가 몹쓸 병에 걸리게 만드는
저주였어요. 남편은 마녀에게 납작 엎드리며 말했습니다.
아내가 어렵게 아이를 얻었지만 병에 걸렸고
그 병을 고치려면 라푼젤을 먹여야 했다고요.
그러니 한 번만 용서해달라고 사정했습니다.
마녀는 남편의 간곡한 부탁에 아내에게 저주를 내리진
않겠다고 했어요. 하지만 남편에게
다른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바로 라푼젤을 먹고
건강해진 아내가 아이를 낳게 되면
그 아이를 자신에게 바치란 것이었습니다. 남편은
어쩔 수 없이 마녀에게 그러겠다고 약속하고 말았어요.
아내를 잃을 수는 없었다고 생각했거든요.
이윽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아내는 건강한 여자아이를
낳게 되었습니다. 기뻐하는 아내를 뒤로하고
남편은 아이를 낚아채 곧바로 마녀에게 갖다주었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아내가 저주에 걸릴 테니까요.
아이를 건네받은 마녀는 약속대로
저주를 내리지 않기로 했어요. 아이의 이름은
들상추의 이름을 따서 라푼젤이라고 지었습니다.
이번에는 그 누구도 바라보거나 훔쳐갈 수 없도록
라푼젤을 숲속에 있는 탑 꼭대기에 가두었습니다.
마녀는 탑 꼭대기로 올라가는 문을 마법으로 없애버렸어요.
아무도 함부로 라푼젤이 있는 곳까지 가지 못하게 하려고요.
시간이 흐르고 흘러 라푼젤은 아름다운 여인으로
자랐습니다. 마녀는 그런 라푼젤을 보기 위해
탑으로 갈 때마다 창문을 향해 소리쳤어요.
"라푼젤, 너의 머리카락을 내려 다오."
금빛 머리카락을 빗으며 맑은 목소리로 노래하던 라푼젤은
마녀의 외침이 들릴 때마다 창문 밖으로
긴 머리카락을 내려주었어요. 마녀는 탑의 작은 창문에서
길고 탐스러운 금빛 머리카락이 내려오면
그 머리카락을 타고 탑 꼭대기로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 라푼젤은 여느 때와 같이 아름다운 목소리로
멋진 노래를 부르고 있었어요. 때마침 왕자가
숲속을 지나고 있다가 라푼젤의 노랫소리에 이끌려
탑까지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왕자는 아름다운 목소리의 주인공을 만나고 싶었지만,
탑 꼭대기까지 올라갈 방법이 없어 실망했어요.
그때였어요. 왕자는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놀라
덤불 속으로 몸을 황급히 숨겼어요.
이윽고 마녀가 나타나 탑 꼭대기를 올려다보며 외쳤어요.
"라푼젤, 너의 머리카락을 내려 다오."
이윽고 탑 꼭대기의 작은 창문에서
찰랑이는 머리카락이 내려왔습니다. 마녀는
라푼젤의 머리카락을 타고 탑 꼭대기로 올라갔습니다.
이를 모두 지켜보던 왕자는 그다음 날
탑을 다시 찾아왔습니다. 마녀가 없는 것을
확인한 왕자는 마녀처럼 똑같이 탑 꼭대기를 보며
머리카락을 내려달라고 외쳤어요. 그러자
창문을 통해 긴 머리카락이 내려왔어요.
왕자는 그 머리카락을 타고 탑 꼭대기로 올라갔습니다.
탑 안에서 라푼젤은 마녀가 올라오길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런데 올라온 것은 마녀가 아니라 왕자였습니다.
난생처음 마녀가 아닌 다른 사람을 만나게 된 라푼젤은
깜짝 놀랐어요. 왕자도 깜짝 놀라긴 마찬가지였습니다.
라푼젤이 너무 아름다운 여인이었기 때문이에요.
그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첫눈에 반했습니다.
그날 이후 왕자는 마녀가 없는 날이면
매일매일 탑을 올라와 라푼젤과 함께 시간을 보냈습니다.
라푼젤은 왕자에게 노래 부르는 법을 알려주고
그림 그리는 법도 알려줬어요. 왕자는 탑 바깥의 세상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해줬습니다. 둘의 사랑은
날이 갈수록 깊어졌어요. 왕자는 라푼젤과 평생을
함께 하고 싶었습니다. 탑 꼭대기에서만 시간을 보내는 대신
자신의 왕국에 가서 행복하게 살고 싶었어요.
왕자는 라푼젤에게 사랑의 마음을 고백했습니다.
이 탑을 나가서 영원히 함께하고 싶다고 말이지요.
라푼젤도 수줍게 웃으며 왕자의 손을 잡았습니다.
왕자는 탑을 떠날 준비를 해오겠다며 탑 밖으로 나갔어요.
라푼젤은 왕자가 돌아오면 왕자와 함께
탑을 떠날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마녀가 알고 말았습니다. 왕자가 탑을 드나들며 남겨놓았던
발자국들 때문에 말이에요. 화가 머리끝까지 난 마녀는
가위로 라푼젤의 긴 머리카락을 잘라버렸어요.
찰랑이던 라푼젤의 기인 머리카락이 후두둑 하고
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화가 풀리지 않았던 마녀는
라푼젤을 황무지로 보내 버렸습니다.
날이 덥고 물도 부족한 그곳에서
아주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라고 말이에요.
그러곤 마녀는 탑으로 다시 돌아와 왕자를 기다렸습니다.
자신의 것을 탐냈던 왕자를 그대로 둘 수 없었기 때문이에요.
다음날, 라푼젤과 함께 탑을 떠나기 위해
탑을 찾아온 왕자가 라푼젤을 향해 머리카락을
내려달라고 말했습니다. 왕자의 목소리를 들은 마녀는
잘라냈던 머리카락을 창문 밖으로 내려주었습니다.
왕자는 아무런 의심 없이 머리카락을 붙잡고
탑 꼭대기로 올라갔어요. 꼭대기에 도착하자
창문 밖으로 마녀가 불쑥 나타났습니다.
왕자는 라푼젤이 아니라 마녀가 나타나자 너무 놀랐어요.
마녀는 너무 놀란 나머지 움직이지도 못하고 있던 왕자를
그대로 탑 아래로 밀어버렸습니다. 왕자는
머리카락을 놓치고 아래로 추락했어요. 왕자는 탑 주변을
에워싸고 있던 가시덤불 위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왕자는 그만 가시덤불에 눈을 찔려
더 이상 앞을 보지 못하게 되고 말았어요.
더 이상 아무것도 볼 수 없었지만 왕자는
라푼젤을 잊지 못하고 라푼젤을 그리워하며
사방을 헤매기 시작했습니다.
한 번만이라도 라푼젤의 아름다운 목소리와 노래를
다시 한번 듣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한편 황무지로 쫓겨난 라푼젤은 작은 외딴 마을에서
겨우겨우 힘든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많은 시간이 흘러도 라푼젤은 왕자를 잊지 못하고
하루하루 왕자를 그리워했어요. 매일같이 눈물을 흘리며
지내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마을 사람 한 명이
깡마른 거렁뱅이와 함께 마을로 돌아왔습니다.
마을 사람은 거렁뱅이가 사막 한가운데를 헤매고 있길래
도움이 필요해 보여 데리고 왔다고 했어요.
그 거렁뱅이는 앞이 보이지 않는 장님이었고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지쳐 있었습니다.
라푼젤은 그런 거렁뱅이에게 마을에 얼마 남지 않은 물과
음식을 가져다주었어요. 이를 받은 거렁뱅이는
헐레벌떡 음식과 물을 마시고 나서는
갈증과 허기가 가시자 연신 말했어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라푼젤은 그 거렁뱅이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깜짝 놀랐어요.
늘 꿈에 그리던 왕자의 목소리였거든요. 라푼젤은
단 한순간도 왕자의 목소리를 잊은 적이 없었습니다.
라푼젤은 눈물을 흘리며 거렁뱅이가 되어버린 왕자를
끌어안았습니다. 왕자는 눈앞이 보이지 않았지만
왕자 역시 앞에 있는 것이 라푼젤임을
단번에 알아차렸습니다. 매일같이 서로를 그리워하다가
운명처럼 둘이 다시 만나게 된 것이었어요.
두 사람은 서로를 다시 만나기까지 길고 길었던
힘든 시간들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만나게 되었단 사실에
그 둘은 서로를 끌어안고 아무 말 없이
눈물을 펑펑 쏟았어요. 라푼젤의 진심이 담긴 눈물이
왕자의 얼굴 위로 또르르 떨어졌습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어요. 왕자가 다시
세상을 볼 수 있게 된 것이었어요. 눈을 뜬 왕자 앞에는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라푼젤이 있었어요.
그 둘은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먼 황무지에서 마침내 다시 만날 수 있게 됐어요.
눈앞이 다시 보이게 된 왕자는 기력을 되찾고
라푼젤을 데리고 자신의 왕국으로 돌아갔습니다.
왕자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던 왕과 왕비가
그 둘을 성대하게 맞아주었어요.
그 둘은 온 국민이 보는 앞에서
아주 성대한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그 둘은 오랜 고난 끝에 다시 만나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