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진 3

정태춘 & 박은옥

정동진에 파도 치고 거기 무지개를 향해
낚시를 던지는 사내 하나 나는 봤지
그 투명하고 가느다란 낚싯줄에 매달려
허공을 날아가는 새우, 나는 봤지
아니, 납덩어리에 풍덩, 파도 속으로 사라지는 것도,
또, 그 사내 장화 발치에 죽은 생선들이 담긴
일제 아이스박스도 나는 봤지

동태평양 멕시코 연안 그들의 긴 긴 모래밭,
그 찬 바다에 낚시를 던지고
석양을 바라보며 응숭그리고 섰던
맨발의 추레한 중년 멕시칸 사내와
그 사내 발치의 작은 고무통. 거기, 어린 가오리들의 슬픈 목숨과
그들의 구질구질한 살림살이도 나는
그 바다에서 봤지, 그 바다에서
그렇게, 아직 20세기의 제 3세계 남루한 사내들이서로를마주보며
싸구려 미끼를 던지는 먼 먼 바다 위론 태양 빛,
한 태양 빛 아래 동과 서로 날짜를 바꾸는 일자변경선이 지나가고
그 보이지 않는 선 위로 또
파도보다 조밀한 해도를 따라
거대한 상선들과 구축함대가 지나가고.
뭍에 없는 희망을 파도 속에서 찾으려는가
아, 바하 캘리포니아 아, 정동진

맨발과 만성 비염의 코흘리개 애들 그리고,
부스럼 투성이의 멕시코 개들,
먼지 뽀얀 트레일러 마을과 찡그리며 인사하고
긴 긴 사막 위로 끝도 없이 세워진 함석 판때기 사이
철통같은 국경선을 넘어 미국으로 들어가다
US 5번 국도 해안 절개지 아래 길다란 평원에서
기동 훈련하는 수 십대의 헬기 부대도 나는 보았지
또, 나른한 샌디애고 해안 온 몸 출렁거리는 지방질의
살갗 뽀얀 칼라풀한 튜브들도 나는 봤지
아, 바하 캘리포니아, 샌디애고, 정동진...
저 기차는 어디로 가는가
강릉 시내 들어와 중앙 시장 골목을 헤매다
마른 오징어를 한 축 샀지
또 한 골목을 돌아 좌판에서 생선 내려치는
무쇠 칼, 가장 큰 칼을 하나 샀지
후두둑, 소나기 노점 천막을 후려치고 지나간 뒤
중앙로 철길 너머 먼 하늘 위 쌍무지개도 나는 봤지

그날 밤에도 영화배우 박 아무개는 맥주를 마시며 돈을 벌고,
돈을 세고 또, 맥주를 마시고
나도 테레비를 보며 맥주를 마시다 취해 잠들어
꿈에 다시 동태평양 찬 바다와 그 투명한 햇살
정동진 바다 끝 외무지개와
강릉 시내 하늘 위의 쌍무지개를 다시 봤지
또 세 쌍무지개, 네 쌍무지개를 봤지
때로 시내를 지나, 동해안 야산 언덕을 수도 없이 지나,
때로 절망같은 해안길 파도 부스러기에 젖어
철로 위를 끝도 없이 달리는
지난 세기의 철도청 화물 열차도 다시 봤지
그리고, 아직 날이 서지 않은 그 무쇠칼로
저 허망한 무지개들을 밤 새 자르며, 휘두르며...
그리고, 그러면 그럴수록 다시 수평선 멀리 멀리 솟아오르는
수많은 무지개들을 나는 봤지

정동진 "선로에 계신 분들은 열차가 들어오니 모두 바닷가
쪽으로 내려가 주시기 바랍니다"
정동신 "모두 바다로 내려가 주시기 바랍니다.
바다로 내려가 주시기 바랍니다"
정동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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