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리
춘향이가 이 말을 듣더니 오 그러면 지금 이게 이별이란 말이여 그러 이별이야 되겠느냐마는 잠시 후기약을 둘 수 밖에 도리가 없구나 춘향이가 이 말 듣더니 면경체경을 쳐부셨다허나 왼갖 예의를 다 아는 춘향으로 그랬을리도 없으려니와 사람이란 본디 너무나 엄청난 말을 들으면 기색이 먼저 달러지는 법이라 춘향이 이 말 듣더니마는 대번에 얼굴빛이 확 변허는듸
진양
분 같은 얼굴은 저절로 숙여지고 구름 같은 머리카락 스사로 흘러지고 앵두 같이 붉은 입술 외꽃 같이 노래지고 샛별 같은 두 눈을 동튼 듯이 뻔히 뜨고 도련님만 무뚜뚜룸이 바라보며 말 못 허고 한숨만 쉬더니마는 얼굴이 방재사색이라 도련님이 겁이 나서 춘향의 목을 부여잡고 아이고 이 사람 죽네 춘향아 정신 차려라 내가 간다해도 아주 가는 게 아니다 정신 차려라 춘향아 춘향이 그제야 겨우 정신을 차려 아이고 여보 도련님 여보 여보 도련님 무엇이 어쩌고 어째요 지금 허신 그 말씀이 참말이요 농담이요 이별 말이 웬 말이오 답답허니 말을 허오 작년 오월 보름날에 소녀 집을 나와겨서 도련님은 저기 앉고 춘향 나는 여기 앉어 천지로 맹세허고 일월로 증인을 삼어 상전이 벽해되고 벽해가 상전이 되도록 떠나 살지 말자더니 말경의 가실 때는 뚝 떼여 바리시니 이팔청춘 젊은 년이 독수공방 어이 살으라고 못 허지 못해요 공연한 사람을 사자 사자 조르더니 평생신세를 망치요 그려 향단아 안방에 들어가서 마나님께 여쭈워라 도련님이 떠나신다니 이 놈의 노릇을 어찌 할거나 사생결단을 헐란다 마나님 오시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