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봉민김밥을 지나, 이선정헤어를 지나
양평해장국을 지나, 근대화슈퍼를 지나
집에 왔는데, 돌아보니, 간판이 다 떨어졌네
아버지 정관을 지나, 엄마의 난자를 만나
수정에 수정을 거쳐, 엄마의 자궁을 열고
태어났는데, 돌아보니, 아버지 토끼고 없네
인생이 별 거 있나?
코스대로 가다 보면 배반당하는 거지
인생이 별 거 있나?
간판 바꿔 달다 보면 폭망하는 거지
중학교 도서반 거쳐, 고등학교 문예반을 거쳐
대학교 국문과 거쳐, 전원문학회를 거쳐
시를 썼는데, 돌아보니, 보여줄 게 하나도 없네
시라는 게 별 거 있나?
지가 사는 모양대로 쓸 수 있는 거지
아침엔 학교엘 가고, 저녁엔 학원에 가고
주말에 독서실 가고, 때로는 야동도 보며
공부했는데, 찾아보니, 대학을 갈 데가 없네
공부란 게 별 거 있나?
줄 세우기 놀음이고 솎아내는 거지
인생이 별 거 있나?
간판 바꿔 달다 보면 폭망하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