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날 (드뷔시 : 월광, 릴케 시)

이종환
앨범 : 이종환의 명시감상 Vol.2 (외국 시)

가을날 - 릴케
주여, 때가 되었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던져주시고,
들녘에는 바람을 놓아주십시오.
마지막 남은 열매가 무르익도록 하명하여 주시옵고
남극의 날씨를 이틀만 더 베풀어 주소서.
무르익으라 이들을 재촉하여 주시고,
마지막 남은 단 맛이 포도주에 듬뿍 괴게 하소서
이제 집이 없는 사람은 다시는 집을 짓지 않습니다.
이제 고독한 사람은 오래오래 고독을 누릴 것입니다.
밤을 밝혀 책을 읽으며 긴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
그러다 불안에 잠기면 가로수 길을 마냥 헤맬 것입니다.
잎이 휘날리는 그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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