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산길로 접어드는 양복쟁이만 보아도
혹시나 산감이 아닐까 혹시나 면직원이 아닐까
가슴 조이시던 어머니
헛간이며 부엌엔들
청솔가지 한가지 보이는 게 없을까
허둥대시던 어머니
빈 항아리엔들 혹시나 술이나 차지 않았을까
허리 굽혀 코박고
없는 냄새 술냄새 맡으시던 어머니
늦가을 어느해
추곡 수매 퇴짜 맞고
빈속으로 돌아오시는 아버지 앞에
밥상을 놓으시며 우시던 어머니
순사 한나 나고
산감 한나 나고
면서기 한나 나고
한 집안에 한 사람만 나도
웬만한 바람엔들 문풍지가 울까부냐
아버지 푸념 앞에 고개 떨구시고
잡혀간 아들 생각에 다시 우셨다던 어머니
동구밖 어귀에서 오토바이 소리만 나도
혹시나 또 누구 잡아가지나 않을까
머리끝 곤두세워 먼산
마른하늘 밖에는 쳐다볼 줄 모르시던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
다시는 동구 밖을 나서지 마세요
수수떡 옷가지 보자기에 싸 들고
다시는 신작로 가엘랑 나서지 마세요
끌려간 아들의 서울
꿈에라도 못 보시면 한시라도 못살세라
먼길 팍팍한 길
다시는 나서지 마세요
허기진 들판
숨가쁜 골짜기
시름의 바다 건너 선창가 정거장엘랑
다시는
다시는 나서지 마세요 어머니